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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글을 이렇게 쓴다.



지난 28일 한문협 밴지부 신인 시상식에 다녀왔다.

본인이 아름다운 캐나다 발행 때 아내와 더불어 글 쓰는 이로 캐나다 전국을 같이 누빈 김해영 회장과의 인연도 있지만 밴문협은 초기에 본인이 회원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신인으로 등단한 두 분의 시인과 두 분의 수필가가 상패를 받았다. 네 수상자의 작품과 최근에 등단했던 새내기 네 등단자의 글 발표도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김회장의 심사평이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보는 듯했다. 아주 좋았다.


모든 회원은 당연히 등단한 문인들이다. 그런데 글 쓰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글에는 글쓴이가 스스로 고민한 흔적이 배어 있어야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 작문 쓰듯이 일차적인 이야기로 일관하였다면 어찌 독자들이 그 글에 이끌리며 감동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일반적인 이야기로 글을 이끌어가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화장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게 어디 아름답다 하겠는가.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면 글이 탁해진다. 화장은 한 듯 만 듯 절제를 해야 예쁘다.


본인의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한다. 등단하기 전에는 글을 아무렇게나 써서 신문사에 보냈다. 그런데 우연찮게 등단을 하고 나니 글쓰기가 어려워지더라는 것이다. 등단된 사람이 이걸 글이라고 발표하나 낄낄거리는 독자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시는 잘 모르지만 시나 수필이 같은 창작품이라는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수필이란 무엇인가. 내 삶에서 우러난 진실 된 나 자신 내면의 소리다. 또 철학이 배어진 진솔한 자기 고백이 아닐까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과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된다. 그래서 한편의 시나 수필을 쓸 때 나만의 소리를 찾아내는 노력과 고민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예를 들어 보자.

오래전 한국 대산련 오지 탐사대의 안내를 맡아 3막 4일, 밴쿠버 아일랜드 서편에 있는 눗카(Nootka) 트레일을 탐방한 바 있다. 그 산행기가 서울의 조선일보 ‘山지’에 발표되기도 하였는데 그 마지막은 이렇다.


‘메아리를 모르는 바다, 불러도 대답할 수 없으니 그는 영원히 고독할지 모른다’


이 산행 수필을 미주문학에 보냈더니 당시 모스코바 대학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던 수필가이자 평론가인 김효자님이 평하기를;


‘물론 이글은 기행성 수필이기 때문에 여행지 곳곳의 정경(情景)과 묘사(描寫)가 문맥의 주류(主流)를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화자(話者)는 글의 시작 부분과 끝 부분의 문맥을 변용(變容) 함으로써 기타 문맥 전체를 창작 패턴으로 이화(異化)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 곧 박병준님의 수필 ‘메아리를 모르는 바다’는 이 글 맨 앞에서 예시한 박영보님의 ‘보고 싶은 아이’와 더불어 창작 수필의 예시적인 패턴으로 주목을 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부분은 ‘메아리를 모르는 바다’다.


이 말이 어디 어려운 말이던가. 아주 쉬운 말이지만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마지막 한 줄을 찾아 며칠을 고민했다. 그때 슬라이드로 찍었던 사진을 확대해 들여다보고 눈을 감고 바다를 바라보던 감정을 불러오고 끙끙 대다가 찾아낸 대목이다.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어찌하여 이 대목을 찾았지? 볼 때마다 행복해 진다. 이게 글 쓰는 이의 보람이요 기쁨이다.


본인이 등단하기 전에 발표한 수필이 하나 있다. 이렇게 시작한다.


'본토 인디언들의 말에 의하면 창공에 날던 새가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면 제일 먼저 독수리가 보게 되고 사뿐히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사슴이 들으며 곰은 그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다'


어떤 지인이 수필집을 내었는데 이 대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자기 글로 만들어 놓았다. 전화를 하여 “어찌 남의 글을 도둑질 했느냐”고 하였더니 죽을 맛이다.

그 작가가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행복할까? 아니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부끄럽지 않다면 그는 이미 문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글을 발표해 놓고 행복하지 않다면 글 쓴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밴쿠버 유명한 여류시인의 시에 ‘사랑이란 말속에 들어가 눕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어려운 단어의 모임인가 말이다. 쉬운 말이지만 이 한구절로 그 전체의 시가 살아난다. 읽는 사람도 기쁘고 본인도 읽을 때마다 행복해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찾아낸 표현들이 두 세 곳 글속에 자리한다면 그 수필은 생명력을 지닌다. 독자들의 박수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보지 않아도 보인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고민한다. 잠을 설치기도 한다.


새로 등단한 분들은 자기 글에 한없이 행복해지는 글쟁이가 되기를 바란다.

글에서 고민한 흔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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